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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창 기자의 거짓과 진실

안톤 체호프의 위대한 생애

우종창 2020.12.25 11:11 조회 수 : 243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단편(短篇)을 많이 쓴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 출신의 의사인 그는 객관주의  문학론을 주장하고, “재판관이 아니라 사실의 객관적인 증인이 되는 것이 작가의 과제라고 보았다

 

그의 작품이 널리 애독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속악(俗惡)과 허위를 싫어하고, 인간과 근로(勤勞)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어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독자의 가슴속에 심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사망한 안톤 체호프의 위대한 생애를 응급의학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남궁인이 2020. 12. 25. 국민일보에 섰다. 국민일보 기사를 인용,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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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는 문학사에서 의사를 겸직했던 작가를 논할 때 항상 첫 번째 순서로 꼽히는 문호다

그는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현대 소설의 형식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빼놓을 수 없다

약자를 바라보고 치유하는 시선이 그의 글과 인생에 온전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글을 쓴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남부 러시아의 타간로크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을 매질로 다스리는 지독한 장사치였고, 그가 열여섯 살에 완전히 파산했다

두 명의 형은 모스크바로 피신해 있었다


그는 빈민가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생계를 꾸리며 공부해 열아홉 살에 모스크바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한다.

대학교 시절에도 그는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서 잡지사에 투고하기 시작한다

안토샤 체혼테, 지라 없는 사나이등의 필명을 사용한 그는 많은 고료를 위해 짧은 소설을 다수 쓴다.

 

그가 남긴 510편의 소설 중 약 300편을 당시 2년 동안 발표했다

이 시기 소설은 한마디로 유머 단편이다

그는 자신을 익살스러운 사람으로 묘사했고 어릴 때부터 유쾌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작은 가벼운 분량으로 특유의 해학을 담고 있다.

 

그러던 그는 한 평론가의 편지를 바탕으로 각성한다

작품의 묘사가 정확하고 진실성이 담겨 있지만 필명 뒤에 숨어 문학적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충언이었다.

 

그에겐 실제로 위대한 재능이 있었다

체호프는 가벼운 글을 써왔던 자신을 되돌아보다가 문학의 본질에 눈을 뜬다

얼마 뒤부터 그는 유머 단편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작품을 실명으로 발표하고 진지하게 소설 창작과 극작에 몰두한다

그의 문학은 점차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는 작가를 인민의 지도자로 여겼다

그는 평생을 글쓰기 본연에 매진한다고 했지만 사회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폐결핵에도 불구하고 극동의 사할린으로 여행을 결심한다.

마차로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해 단신으로 80일 만에 사할린에 도착한다

지금도 문학사에 회자되는 여정이다


제정 러시아에서 사할린은 황폐한 유형지이자 비참한 민중의 삶이 있는 땅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목격한 그는 돌아와 현실을 바라보는 작품을 써낸다

논픽션 사할린 섬은 당시의 여행을 절절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그는 인민을 계몽할 의무를 느꼈고 현실에 저항한다

이후 집필한 6호 병동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병원의 모든 일은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절도와 다툼과 험담과 정실과 그리고 노골적인 엉터리 진료 위에 있다

병원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부도덕한 시설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에 극도로 유해한 시설이다.”

 

100여년 전 의사가 사회적 부조리를 목도하고 한탄하는 말이자 민중의 삶을 바라본 그의 일갈이다.

 

말년의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식을 개척하며 위대한 극작가로서의 족적을 남긴다

시사적 문제와 민중의 향상을 논하면서 인생을 탐구하는 명작들이다

또한 그는 농민을 무료로 진료하거나 농민의 자식에게 글을 가르치고 기근과 콜레라에 대한 대책을 세웠으며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약자를 돌보는 자아와 사상이 강렬하게 드러났던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따라다니던 폐결핵이 악화해 마흔네 살을 일기로 요절한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문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적어도 쓴다는 행위는 그를 좇아가는 과정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체호프의 위대한 생애에서 고통받는 자들을 도외시하지 않았던 대문호의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