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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창 기자의 거짓과 진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자 꽃 전문가인 김민철 기자가 조선일보 2020. 12. 29.자에 

김민철의 꽃이야기/ 당신의 인생 꽃 한 송이를 고른다면?이라는 칼럼을 썼다

김민철 기자의 꽃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문,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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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는 올 연말 언론사 등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에 여러 번 등장한 책이다.

가상의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심시선이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가계 구성원들이 

그녀가 죽고 10년 후 하와이에 모여 단 한 번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다.

 

가족들이 하와이 숙소에 모였을 때 큰딸 명혜가 한 말을 보면 소설 전체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이 말처럼 가족들은 하와이를 여행하면서 심시선과 얽힌 에피소드를 회상하고 무엇을 제사상에 올릴지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하와이에 오기까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등이 각자의 시선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들의 느낌과 심리, 아직도 남아 있는 가부장제에 불편함 또는 거부감을 

잘 묘사했다고 느꼈다.

 

심시선은 실존 인물은 아니다.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고 했다.

작가는 나의 계보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것이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신문학 최초의 여류문인)이나 나혜석(첫 여성 화가이자 작가)에게 있음을 깨닫는 몇 년이었다

만약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꽃 중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둘째딸 명은은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선물 받은 오히아 레후아 꽃을 제사상에 올렸다.

빅아일랜드 화산지대를 걷다가 한 식물학자로부터 선물 받는 꽃이다.

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쯤에 잠겨 걷다가 지난해 용암이 흘러내린 모양 그대로 굳은 들판에서 

무언가를 채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중략) “뭘 채집하고 계신 거예요?”

명은 쪽에서도 관심을 보여야할 것 같아 들여다보며 물었다.

오히아 레후아예요.”(중략).

유용한 충고에 감사를 표하며 꽃송이를 돌려주자 식물학자가 잠시 모자챙을 젖히고 명은을 보더니

종이 사이에 그것을 조심스레 끼우고 구석에 라틴어 학명도 적어 다시 건넸다.

선물이에요.”(중략).

고마워요. 제가 빅아일랜드에서 찾고 있었던 게 이거였던 것 같아요.”>

 

오히아 레후아(Ohia Lehua)가 어떤 꽃인지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물로, 우리나라 수목원 온실에서 볼 수 있는 병솔나무 꽃과 비슷했다.

꽃 모양이 병을 닦는 솔처럼 생겼다고 이름이 병솔나무다.

오히아 레후아 꽃은 나무와 꽃이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것이 특이하다.

그러니까 오히아나무에서 피는 레후아꽃이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하와이 전설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불의 여신 펠레가 오히아라는 멋진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오히아는 이미 아름다운 여인 레후아와 연인관계여서 펠레의 청혼을 거절했다.

화가 난 펠레는 오히아를 화산지대에서 자라는 회색빛 나무로 만들어버렸다

레후아는 다른 신들을 찾아다니며 오히아를 되돌려 달라고 호소하지만 다들 펠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들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레후아의 간절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둘이서 오래 함께하라며

레후아를 오히아 나무에서 자라는 빨갛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어주었다.>


또 하나는 플루메리아로, 명혜·명은·경아 세 자매가 강습소에서 훌라춤을 배우고 나오는 장면에 나오고 있다.

 

<자매가 강습소에서 걸어 나오는데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꽃을 줄게요.“

/”, 감사합니다.“

/”치마와 어울릴 거예요.”

/문가의 나무에서 희고 향기가 좋은 꽃 세 송이를 따더니명혜 명은 경아 순으로 귀 뒤에 꽂아주었다.

나이를 잘 가늠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꽃 이름이 뭔가요?“

/"푸메리아.”>

 

여기서 푸메리아는 하와이 등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플루메리아(Plumeria)를 잘못 쓴 것 같다.

향기가 진하고 꽃잎 5개가 바람개비 모양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소설에서도 달콤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향기가 오래갔다고 했다.

흰색, 노란색, 붉은색, 분홍색 등 다양한 색이 있다.

하와이에서 화환을 만드는 데 많이 쓰여 러브하와이라고도 부른다.

 

레후아 꽃이나 플루메리아가 소설에서 어떤 상징으로까지 쓰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레후아 꽃은 화산 용암으로 굳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점에서

1950년대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첫발을 내딛어 일가를 이룬 심시선의 인생 꽃으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또 두 꽃 모두 하와이를 대표하는 꽃이라 주요 소재로 쓰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 핀 꽃들이 작가 특유의 톡톡 튀는 문장과

잘 어우러지면서 소설의 풍미가 확 높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