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국정원의 주사파 간첩단 수사 내막

입력 2003.02.16 23:56 | 호수 199910

강철 金永煥, 마음의 行路 「강철 시리즈」란 선동 文件으로써 1980년대의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퍼뜨린 金씨는 1991년에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 金日成과 두 차례 만나 격려와 훈시를 듣고 내려왔다. 그는 地下黨을 만들고 공작금(40萬달러)을 받아 總選에 쓰는가 하면, 對北보고도 하는 간첩생활을 계속하다가 金日成-金正日 집단에 회의를 느끼면서 공개적으로 북한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黃長燁씨 망명 이후 완전히 전향한 그는 지난 7월29일에 중국에서 돌아와 國情院의 전향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말誌와 폭로 인터뷰를 한 뒤, 金浦공항을 통해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그의 전향은 위장이었나, 진실이었나?

『1997년 9월을 분수령으로 그 前에는 흔들렸고, 그 後에는 완전 전향이다』 (國情院 수사 관계자), 『金正日 타도를 외치는 간첩이 어디 있나?』(金永煥씨 어머니), 黃長燁씨도 설득에 나섰다.

한 숟가락의 밥을 떠서 씹고 또 씹으며, 천천히 먹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어제(1999년 8월17일)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이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 제 내복과 돈 좀 가지고 김포공항으로 와 주십시오』라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을 때, 어머니는 몸이 떨렸다.

김포공항으로 오라는 것은 국외 「탈출」을 말한다. 그런 다급한 가운데서도 아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밥알을 씹으며 아주 천천히, 늦은 점심을 먹는 것을 지켜보며 어머니는 마음을 추스리려 했지만 긴장된 탓인지 계속해서 입술이 떨렸다.

몇시간 후면 아들은 KE(대한항공) 605편을 타고 홍콩으로 떠난다고 했다.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 지 기약이 없다. 아들이 무사히 김포공항을 빠져나갈지도 자신이 없다. 중국에서 올 때(1999년 7월29일)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모자를 쓰고 배낭 하나 매고온 아들이어서 짐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비행기 표는 어머니가 공항에 도착해 돈을 지불하고 이미 받아놓았다. 돈도 넉넉하게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이 오후 6시35분이어서 시간이 남은 어머니와 아들은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 저, 말지(月刊 말誌)와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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