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으로 낙인찍혀 온 ‘특무대부장 김창룡’의 참모습

[서평]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 특무대장 김창룡의 재평가

“특무대는 사사로운 정치 관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군내 장병들의 반란 음모와 공산 세포를 완벽하게 색출하는 본연의 방첩 업무에만 전념하겠습니다”라면서 대통령의 명령을 정중히 거부했다는 일화는 김창룡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창룡은 일제강점기 북만주에서 악질 일본 헌병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애국독립투사를 투옥했으며, 중지(中支) 방면의 연합국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일할 때는 포로를 학대한 친일 전범이다. 그는 월남한 후 공산당을 쫓는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기화로 개인의 영달을 위해 혈안이 되어 행동하였다. 그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숙청을 되풀이하여 공산당원 1에 대하여 양민 10의 비율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혔다. 김창룡이 취급한 사건 전부가 허위 날조됐거나 침소봉대된 것이다. (중략) 군내(軍內)에서는 참모총장, 국방장관 등 고급 장교들을 모함하고, 위협·이간·항명·월권을 일삼아 안하무인으로 군통수권과 지휘권을 유린하였다.”

김창룡 특무부대장 암살범 허태영이 재판 과정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암살자가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빚어낸 ‘김창룡 상(像)’은 이후 60년간 언론 기사, 드라마, 책, 학술논문 등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김창룡이 암살된 지 4년 뒤에 이승만 정권이 4·19로 무너졌고, 김창룡의 표적이 되었던 일부 군내 부패 세력이 3·4공화국 시절 영달한 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김창룡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정설(定說)처럼 자리 잡았다.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나름 보수적이라고 하는 지식인 중에서도 김창룡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책은 김창룡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저자는 김창룡이 남긴 자전적(自傳的) 기록(《숙명의 하이라루》로 출간)과 일본 정부가 작성한 《유수명부(留守名簿)》 등을 통해 김창룡은 북만주에서 소련 간첩과 중공당원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이던 정예 ‘첩보헌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친일’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하던 ‘악질 헌병’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가 발견한 ‘군인 김창룡’은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어 날뛰었던 ‘정치군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타공(打共)’에 대한 소명(召命)의식 하나로 살았던 청렴 강직한 군인이었다.
김창룡은 부산정치파동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야당 의원들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자 “특무대는 사사로운 정치 관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군내 장병들의 반란 음모와 공산 세포를 완벽하게 색출하는 본연의 방첩 업무에만 전념하겠습니다”라면서 대통령의 명령을 정중히 거부했다는 일화는 김창룡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사료(史料) 제시와 논증(論證)을 바탕으로 김창룡이 백범 암살의 배후라거나 보도연맹원 학살의 지시자, 9·28 서울 수복 후 무차별적인 부역자 숙청의 책임자라는 항간의 주장들도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또 정일권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나 강문봉 2군사령관이 김창룡 암살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들이 군내에서 ‘원면부정사건’ 등에서 보듯 부정부패를 일삼아 김창룡의 부패 척결 수사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암살을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논증한다. 김창룡이 남긴 《숙명의 하이라루》가 대필(代筆) 수기가 아니라 김창룡 본인이 직접 작성한 ‘대공수사기록’이라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김창룡이라는 군인은 워낙 사(私)가 없이 ‘공산당 잡는 일’에만 매달렸던 사람인지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월간조선》 기자 시절 탐사보도로 이름을 떨쳤던 저자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공백들을 상당 부분 메워낸다. 한국 현대사나 정보전(情報戰)에 관심이 많은 사람, 안보를 걱정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771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힌다.

출처: 월간조선, 글 배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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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평전 :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

저자 소개

李東昱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물리학과(부전공 심리학)를 졸업하고 동(同) 대학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2학년 때 신군부의 과외 및 가정교사 금지 조치로 입대를 결심, 육군 보병 8사단 수색대대, 75사단 정보처, 미2사단 1/31st 보병, 2nd S&T, 등에서 7년간 군 복무(중사 예편)하며 야전과 정보 행정을 두루 거쳤다.
〈월간조선〉 기자로서 현장 취재와 사료 추적에 전념했으며,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 KBS 한국방송 이사 등을 역임했다. 조직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프리랜서 기자로서 현대사의 진실을 추적해 왔으며,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해경 구조대와 함께 수중 30m 아래 선체로 내려가 직접 침몰 현장을 취재하는 등 투철한 현장 정신을 증명해 냈다.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이동욱 기자의 현대사TV〉를 통해 왜곡된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발굴·기록하고 있다.

저서

《김창룡 평전: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 (북앤피플)
《건국 대통령의 삶과 죽음》 (기파랑)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백년동안)
《질경이의 노래》 (백년동안)
《연속변침》 (조갑제닷컴)
《우리의 건국대통령은 이렇게 죽어갔다》 (기파랑)
《파도의 춤 》 (자유전선)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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